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각국 중앙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또한 2020년 이후 활발하게 CBDC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실증 사업과 정책적 로드맵을 통해 국내 금융시스템의 디지털화 기반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의 CBDC 추진 현황을 실증사업, 발행계획, 남은 과제의 세 가지 측면에서 상세히 알아보고, 2025년 현재의 기술적·제도적 발전 상황까지 심층 분석해 보겠습니다.
실증사업: 디지털화폐 실험의 첫걸음
한국은행은 2021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CBDC 관련 모의실험을 진행했습니다. 1단계는 2021년 8월부터 2022년 1월까지로, 기본적인 디지털화폐 발행·유통·환수 과정을 가상 환경에서 테스트했습니다. 이어진 2단계에서는 스마트컨트랙트, 오프라인 결제, 이중지불 방지 등 확장된 기능들을 실험하면서 실사용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검토했습니다.
이 실험들은 클라우드 기반 가상 환경에서 수행되었으며, 카카오의 블록체인 자회사 ‘그라운드X’가 기술 파트너로 참여해 기술력 검증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오프라인 환경에서의 결제 기능 테스트는 실생활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시험이었습니다.
2025년 현재, 한국은행은 “CBDC 활용 모의환경 플랫폼”을 구축하여 민간 기업들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이 플랫폼은 다양한 결제 시나리오를 적용해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로, 은행·핀테크 기업들이 자체 솔루션을 개발하고 정부와 협력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이러한 오픈 이노베이션 방식은 CBDC 개발을 중앙은행의 독점 프로젝트가 아닌, 민간 생태계와 협력하는 방향으로 진화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2025년 상반기부터는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업 프로젝트도 시범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CBDC 기반 지역화폐 실험을 통해 사회복지 급여나 소상공인 지원금의 디지털 지급 효율성을 테스트하고 있으며, 이는 중앙정부 차원의 발행 준비와 맞물려 실효성 있는 피드백 루프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발행계획: 신중하지만 분명한 움직임
한국은행은 아직까지 CBDC의 공식 발행 일정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그 준비는 2025년 현재 보다 체계적으로 다듬어지고 있습니다. CBDC를 위한 핵심 기술 인프라, 법제도 검토, 사회적 수용성 확보까지 다방면에서 준비가 이뤄지고 있으며, "언제든지 전환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2024년 하반기부터는 “조건부 도입 시나리오”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는 국가 재난, 금융위기, 고령화 사회 대응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변수에 따라 CBDC 발행이 ‘필요 기반’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예를 들어, 고령자 복지 급여 지급의 정확성 제고나 청년층 기본소득 정책의 디지털 기반 지급 수단으로 CBDC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습니다.
기술 구조 면에서도 기존의 ‘2계층 구조’ 외에, 하이브리드 구조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예를 들어, 민간 플랫폼을 통해 CBDC를 거래하되, 핵심 거래 데이터는 중앙은행이 직접 관리하는 방식이 검토 중입니다. 이는 금융 혁신과 통화 정책의 조화를 꾀하려는 절충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은행은 2025년 1월 국제결제은행(BIS), 싱가포르, 프랑스 등과 함께 “Project Nexus”라는 다국적 CBDC 결제 시스템 공동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국가의 CBDC가 상호 연동되는 통합 결제 시스템을 실현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으며, 국경 간 송금의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과제: 개인정보 보호와 제도 정비
CBDC 도입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여전히 개인정보 보호 문제입니다. 한국은행은 모든 거래 데이터를 중앙시스템에서 기록하고 관리하는 구조를 택하고 있어,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조건부 익명성’ 또는 ‘제한적 익명성’이라는 중도적 모델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2025년 현재, 한국은행은 유럽중앙은행(ECB)과 공동으로 ‘영지식증명 기반 익명성 보장 기술’을 시험 적용하고 있으며, 디지털 지갑에 저장된 개인 신원이 익명으로 처리되는 동시에, 불법 자금 추적이 가능한 이중 구조를 실현하고자 합니다. 또한, 국내에서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협력하여 새로운 형태의 프라이버시 보장 기준을 마련 중입니다.
법률적 기반도 빠르게 정비되고 있습니다. 2025년 3월 기준, 정부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과 한국은행법 일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이며, 이 법안에는 CBDC의 정의, 발행 주체, 거래 방식, 데이터 보호 원칙 등이 명확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지갑 관리와 관련한 소비자 보호 조항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사회적 수용성 확보 역시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노년층 및 디지털 취약계층의 접근성 문제는 중요한 장애 요소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은행은 은행 창구 기반의 오프라인 CBDC 서비스, 음성 기반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 다양한 접근성 향상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2025년 현재 한국의 CBDC 프로젝트는 초기 기술 검증 단계를 넘어 실용화를 위한 정교한 준비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실증사업과 기술 인프라 개발이 탄탄히 진행 중이며, 다국적 협력과 법적 기반 마련도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와 법제 정비, 국민 수용성 같은 구조적 과제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CBDC는 단순한 통화의 디지털화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경제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대전환입니다. 지금이야말로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토론에 참여해야 할 시점입니다.